“동기가 540명 정도 됐는데 다들 가정형편이 어려워 힘들게 공부했던 기억이 나요. 그래서인지 환경이 어려운 후배들을 위해 동기들이 힘을 조금씩 모아 모교에 장학 사업을 펼치고 있습니다.” (김광진 현대저축은행 회장)
“70년대 초라 다들 어려운 시기였습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하면서 미래를 준비했던 시절이라 그만큼 서로에 대한 정이 각별했던 것 같습니다.” (김효준 BMW코리아 사장)
김광진 회장과 김효준 사장은 재계에서 닮은꼴로 불린다. 상고 출신으로 최고경영자(CEO) 자리까지 올랐다는 점 때문.
실제 두 사람은 고등학교 동창생이다. 덕수상고(현 덕수고등학교) 63회로 75년 같이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졸업 후 사회 첫발을 증권사에서 시작한 점도 같다. 김광진 회장은 이후 자기 사업을 시작했고, 김효준 사장은 95년 BMW코리아 상무로 스카우트되면서 2000년 사장까지 올랐다.
금융계와 자동차업계라는 차이는 있지만 같은 목소리로 “힘들었던 고교시절이 지금의 나를 만드는 데 큰 힘이 됐다”고 입을 모은다. 관가에선 허용석 관세청장이 김 회장, 김 사장과 같이 덕수상고 63회 출신이다.
김광진 현대스위스저축은행 회장
어릴 때부터 사업 관심
“고교 재학 이전부터 자기 사업에 대한 확신이 있었습니다. 월급쟁이보다는 자신이 직접 결정을 내리고 그 결과에 책임지는 것에 더 흥미를 느꼈습니다.”
김광진 회장은 당시 상업학교 출신들이 흔히 그랬듯, 대학 진학보다는 회사 생활을 택했다. 증권사에서 일하면서 금융사를 꾸리겠다는 꿈을 키웠다. 고교 졸업 4년 만인 78년. 사업 기회는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그러나 본인이 원했던 시기가 아니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급하게 사업을 물려받아야 했기 때문. 제대로 준비도 하지 못한 데다 경험도 일천해 실패의 고배를 마셔야만 했다.
그러나 실패는 한 번으로 족했다. 그는 특유의 세심하고 꼼꼼한 성격을 바탕으로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능력을 조금씩 키워나갔다.
김 회장에게 찾아온 ‘위기이자 기회’는 IMF 외환위기였다. 동아투자자문 대표로 있던 그는 당시 외환위기로 채권가격이 하락하면서 큰 손실을 입었다. 다른 사람들은 원금에 대한 미련 때문에 계속 채권을 보유했지만 그는 채권가격이 더 하락할 것이란 판단에 채권을 시장에 과감히 매각했다. 실제 채권가격은 더욱 떨어졌고 김 회장은 이를 더 싼 가격에 매입해 되파는 전략을 폈다. 외환위기가 진정되면서 김 회장은 이 같은 채권 투자로 큰 성공을 거뒀다. 이때부터 김광진 회장은 자신의 꿈을 실현하기 시작했다. 99년 자산규모가 800억원에 불과했던 현대상호신용금고를 인수한 것. 김광진 회장은 “규모는 작지만 여·수신 기능을 가진 저축은행의 성장세를 높이 평가했다”고 말했다.
그는 인수 뒤 사채대환용 소액신용대출인 ‘체인지론’과 인터넷 대출상품인 ‘알프스론’을 업계 최초로 출시해 거래자 25만명 이상을 확보하는 등 초반부터 두각을 보였다.
2002년에는 부동산 PF(프로젝트파이낸싱) 전담팀을 선도적으로 조직해 2006년까지 지속된 부동산시장 호황 덕을 톡톡히 누렸다. 지난해부터 계속된 건설사 부도 소식에도 끄떡없었다. 다른 저축은행과 달리 시공사 신용등급보다는 PF 자체 사업성에만 초점을 둬 투자했기 때문이다.
지난 2년 전부터는 조직문화도 대폭 개선했다. 이른바 ‘C(Change)프로젝트’를 실시한 것. 손욱 농심 회장 등 경영혁신 전문가들을 초청해 우수사례들을 벤치마킹했다. 우수고객을 가려내는 고객 유형화, 여신관리 강화 등을 통해 내부비효율도 줄여나갔다. 그 결과 인수 당시 800억원이었던 현대스위스저축은행 자산은 2008년 3월 현재 2조6000억원(연결 기준)으로 30배 이상 증가했다. 업계 순위도 5위권으로 껑충 뛰었다.
김 회장은 최근 더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얼마 전 금융 감독당국으로부터 자산운용업 본인가를 받은 데 이어 9월에는 캄보디아에 현지은행 설립을 계획 중이다. 이뿐 아니다. 최근에는 충북 소재 중부저축은행을 비롯한 저축은행 인수합병(M&A)에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저성장·고물가 위기가 고조되는 시점에 무리한 확장이라는 지적에 대해 김광진 회장은 “지금이 오히려 기회”라고 답한다. 신규 사업이나 M&A는 경기하강기 때 낮은 비용으로 시도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김 회장은 “지난 2006년부터 경기하강에 대비한 리스크관리를 해왔기에 정해진 스케줄에 따라 목표한 사업들을 차근차근 진행하면서 현대스위스저축은행의 규모를 키워나갈 것”이라 강조했다.
김효준 BMW코리아 사장
63회 동창회 이끌고 있어
김광진 회장과 마찬가지로 김효준 사장 역시 바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서 빨리 취업해서 안정적인 생활을 하는 게 중요했어요. 그래서 고등학교 3학년 7월에 동기들 중에서 가장 먼저 취업을 나갔죠.”
졸업 뒤 증권사와 보험사, 한국신텍스 등에서 근무하던 김효준 사장은 95년 BMW코리아 상무가 되면서 수입차업계에 발을 딛게 됐다. BMW코리아 사장을 맡은 이후 아시아 지역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독일 BMW그룹의 임원에 오르기도 했다.
위기를 기회로 만든다는 점은 김광진 회장과 마찬가지. IMF 경제위기로 외국 자동차 회사들이 한국 시장에서 철수하거나 투자를 줄이는 사이 BMW코리아는 과감하게 투자를 늘렸다. 이후 BMW코리아는 고급 수입차시장에서 줄곧 선두를 달리고 있다. 뒤늦게 대학(방송통신대)과 대학원 공부를 마친 김 사장은 사원을 평가할 때 남녀, 나이, 학벌 등을 구별하지 않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올해에는 ‘지식 이전의 흡수 능력과 동기부여에 관한 연구’라는 논문으로 한양대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 논문은 미국 경영학회와 미국국제경영학회로부터 동시에 인증을 받아, 화제를 불러 모았다. 학계에서도 힘든 일을 현직 CEO가 해낸 것이다.
모교에 대한 애정 또한 남다르다.
김광진 회장의 바통을 물려받아 4년째 동기 회장을 맡고 있다. 개교 100주년을 맡아 장학사업을 하고 야구부를 지원하는 사업 등에도 앞장선다. 개인적으로는 후배들의 진로에 관심이 많다. 매년 모교를 찾아가 후배들을 상대로 강연을 하고 직접 만나는 기회를 가진다.
“상업학교 교과과정은 기본적으로 회사 조직을 이해하고 기본적인 운영의 틀을 공부하게 됩니다. 특별히 숫자에 대한 감각을 많이 익히게 되죠. CEO가 된 이후로도 회사 운영의 곳곳을 제대로 볼 수 있는 눈, 직급이 낮은 직원들을 보살피는 마음가짐, 다양한 부서의 의견을 조율하는 능력 등 긍정적인 영향을 고교시절에서 많이 받았습니다.”
친구인 김광진 회장은 김효준 사장을 어떻게 평가할까. “고등학교 때 문예반 활동을 할 정도로 원래부터 글쓰기에 관심이 많았어요. 그런 밑바탕이 있었기에 경영학 박사 논문이 미국에서 인정받을 수 있었을 거예요.”
허용석 관세청장
고교 때 수재로 불려
허용석 관세청장은 관가의 대표적인 덕수상고 출신. 고교 졸업 이후 곧바로 연세대에 진학해 행시(22회)에 합격했다. 고교 시절부터 ‘수재’로 손꼽혔다. 실제 연세대 경영학과 2학년 때 공인회계사(CPA) 자격증을 따고 3학년 때 행시에 합격했다.
세제실장 등 세제 분야를 두루 거친 세제통이다. 명쾌한 논리와 세련된 매너로도 유명하다. 관세청 관계자는 “업무 처리가 합리적이고, 꼼꼼하기로 소문나 있다”고 평했다. 옛 재정경제부에서 ‘가장 닮고 싶은 상사’로 3년 연속 뽑힐 만큼 후배들에게 인기가 높다.
허 청장의 친화력과 포용력은 청장 취임 뒤 실시한 인사에서 잘 드러난다. 인사 대상 직원들에게 희망하는 자리를 3지망까지 써내도록 하고 이를 성과와 연결시켜 가능한 한 배려토록 했다. 관세청장에 오르자 국내 수출 기업들도 반겼다는 후문. 김효준 BMW 사장, 허용석 관세청장 등 최근 63기 활약상에 대해 김광진 회장은 “동기 중에 똑똑한 인재들이 많았다”고 했다.
[출처- 매경 이코노미 2008.8.2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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